달리기 한 번에 59만 원?

2025. 11. 8. 23:30뉴스

국내 마라톤 참가비 폭등에 러너들 “이건 운동이 아니라 소비다”

 

러닝 인구 1,000만 시대, 달리기 산업의 황금기

코로나19 이후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주목받은 러닝은

이제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특히 MZ세대의 러닝크루 문화, SNS 인증 문화,
‘나를 관리한다’는 트렌드가 결합되면서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러닝을 정기적으로 즐기는 인구는 약 950만 명,
러닝화를 포함한 관련 시장 규모는 2조 원을 넘어섰다.

이 흐름 속에서 마라톤 대회 수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마라톤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2년 300여 개였던 대회가 2025년 현재는 400개 이상으로 늘었고,
단순 기록 경쟁이 아닌 ‘독서 마라톤’, ‘수육런’, ‘야간 뮤직런’ 등
이색 테마형 대회가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러너들이 기대했던 축제의 장은
최근 들어 비싼 참가비 논란으로 변질되고 있다.

 

참가비 59만 원, 호응과 분노가 공존하다

국내 주요 마라톤 대회 참가비는
기본 10만 원대에서 시작해, 프리미엄 패키지는 59만 원까지 치솟는다.


일부 대회에서는 러닝 시계, 티셔츠, 가방, 굿즈 등을 포함한
‘풀 패키지 상품’만 판매하면서 참가자 선택권이 사실상 사라졌다.

러너들은 이에 “마라톤을 뛰러 가는 건지,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러 가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러닝 커뮤니티에서는 '호구팩', '달리기 명목의 쇼핑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특히 한 대회에서는 1,500명 전원이
패키지 형태로만 모집되자
“가격이 아니라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한 러너는 SNS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티셔츠도, 가방도 필요 없다.
참가비만 내고 달릴 수 있는 선택권을 달라.”

 

왜 이렇게 비싸졌나 — 주최 측의 입장

대회 주최 측은 운영비 상승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코로나 이후 물가 상승, 인건비, 보험료, 교통 통제 비용이 급등하면서
예전보다 운영비가 30~40% 증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브랜드 협찬사가 참여할 경우
행사 규모가 커지고 마케팅 비용이 포함되면서
자연스럽게 참가비가 오르는 구조가 된다.

 

한 마라톤 기획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비싸게 받아도 신청자가 몰리기 때문에,
오히려 가격을 낮추면 ‘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생기기도 한다.”

이 말처럼 인기 대회는 접수 시작과 동시에 매진된다.
마치 콘서트 티켓팅처럼 클릭 전쟁이 벌어진다.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주최 측의 가격 인상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다.

 

러너들의 불만은 ‘비용’보다 ‘불공정함’

러너들이 진짜 분노하는 지점은 단순히 비싼 참가비가 아니다.
“비싸도 좋다. 하지만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즉, 강제된 소비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같은 대회인데 20만 원짜리 일반권,
40만 원짜리 프리미엄권을 나눠 판매하면 어떻겠냐”는
합리적인 대안도 제시됐다.

 

러너 김 모 씨(34)는 이렇게 말했다.

“비싸도 납득할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어차피 살 사람은 산다는 식이다.
그런 태도가 러너들을 실망하게 만든다.”

해외 마라톤 대회는 왜 납득할 수 있을까?

 

해외 마라톤 대회는 왜 납득할 수 있을까?

해외 유명 마라톤 대회 참가비도 싸지는 않다.

  • 보스턴 마라톤: 약 40만 원
  • 런던 마라톤: 약 38만 원
  • 도쿄 마라톤: 약 32만 원

하지만 차이는 ‘가격에 걸맞은 서비스’에 있다.

 

축제의 장, ‘마라톤 엑스포(Expo)’

해외 대회에서는 대회 전 주말 동안
‘마라톤 엑스포’를 열어 참가자들이 축제처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러너 전용 강연, 영양 세션, 체험 프로그램, 포토존,
한정판 굿즈 부스가 열리지만, 모두 자율 구매형이다.

즉, 필요한 사람만 산다.
강매가 없고, 자유도가 높다.

 

이런 구조 덕분에 참가자들은 “비싸지만 납득된다”라고 평가한다.

런던 마라톤 한 참가자는 BBC 인터뷰에서 말했다.

“입장료는 비싸지만,
행사 전후 일주일간 도시 전체가 하나의 축제가 된다.
단순히 뛰는 게 아니라, 경험을 사는 기분이다.”

 

국내 대회의 현실과 과제

국내 메이저 3대 마라톤(서울, 부산, 춘천)도 엑스포를 운영하지만
대부분 굿즈를 포함한 패키지 판매 중심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그냥 티셔츠, 시계 다 빼고 참가비를 절반으로 낮춰 달라”는 목소리를 높인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회는 참가비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다.

참가비 인상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운영 내역과 수익 구조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
러너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브랜드 중심의 이벤트성 대회가 늘어나며
‘운동’보다 ‘마케팅’이 앞서는 현상도 문제로 꼽힌다.

 

합리적인 가격, 투명한 구조가 해답

러닝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금,
마라톤 산업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의 경제 생태계다.
그렇기에 운영 투명성, 선택권, 서비스 품질이 앞으로의 성장의 핵심이 될 것이다.

 

해외처럼 참가비 내역을 공개하고, 자율 구매형 시스템을 도입하며,

러너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반영한다면,
국내 마라톤 시장도 충분히 성숙한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한국체육학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참가비 논란은 성장통이다.
진짜 러닝 문화로 발전하려면
‘달리는 사람’을 중심에 둬야 한다.”

 

“달리기는 자유다. 하지만 참가비는 왜 선택이 없을까.”
러너들이 바라는 건 화려한 굿즈도, 유명 브랜드도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 달릴 권리에 합당한 대우와 선택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