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산업이 초래한 환경 오염의 대가

2025. 11. 7. 17:29뉴스

패션 산업이 초래한 환경 오염의 대가

 

티셔츠 한 장, 청바지 한 벌이 남기는 거대한 환경의 발자국


옷 한 벌에 숨겨진 ‘물의 값’

우리가 입는 티셔츠 한 장에는 상상 이상의 물이 들어간다.
흰색 면 티셔츠 1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은 약 2,700리터,
한 사람이 3년 동안 마실 물의 양과 같다.

 

염색 과정에서 이 물은 더욱 늘어난다.
티셔츠 한 장을 염색하기 위해서는
130도 이상의 고열과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산업 물 소비량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물 먹는 괴물 산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은 몇 번 입히지 못한 채 버려진다.
팔리지 않은 재고들은 불태워지거나 매립되고,
그 과정에서 들어간 자원은 검은 재와 온실가스로 바뀐다.


보이지 않는 오염, 미세 플라스틱의 그림자

패션은 더 이상 천(布)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생산되는 옷의 절반 이상은 폴리에스터,
즉, 플라스틱에서 온 섬유다.

 

이 옷들은 세탁기 속에서 미세하게 마모되어
수백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를 만든다.
실험 결과, 옷 1kg을 세탁할 때 최대 67만 개의 입자가 발생한다.
가정에서 세 번 빨래할 때마다 억 단위의 미세 플라스틱이
하수구를 타고 바다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최근 수도권 식수원인 한강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채집한 결과,
하류 지역의 농도가 가장 높았다.
검출된 7종 중 4종이 합성섬유 관련 물질이었으며,
이는 절반 이상이 의류 섬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은 치울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은 회수가 불가능하다.
결국 그 미세 입자들은 우리의 식탁 위로 돌아온다.


폴리에스터, ‘꿈의 소재’가 된 재앙

폴리에스터는 1950년대 ‘꿈의 섬유’로 불렸다.
천연 면보다 70% 저렴하고,
염색이 잘 되며, 주름이 적다는 이유로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이 저렴함의 이면에는
석유를 원료로 한 석유화학 공정이 숨어 있다.
폴리에스터는 본질적으로 페트병과 같은 PET 플라스틱으로,
분해되기까지 수백 년이 걸린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폴리에스터 생산량은
연간 1조 킬로그램, 전체 섬유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가벼운 옷’ 하나가 사실상 화석연료의 부산물인 셈이다.


방글라데시, 패션의 뒷면에 있는 노동의 현실

패스트패션의 중심지인 방글라데시 다카에는
약 8,000개의 의류공장과 400만 명의 노동자가 있다.
이들의 월급은 평균 12만 원.
우리가 커피 한 잔 값으로 티셔츠를 살 수 있는 이유다.

 

공장들이 몰려 있는 게즈플라드 지역의 하천은
염색 폐수로 까맣게 물들었다.
과거 맑은 물이 흐르던 운하는 이제
옷 조각과 쓰레기로 가득 차 생명 없는 강이 되었다.

 

싸게 입는 옷의 그림자 뒤에는,
누군가의 노동과 환경의 대가가 숨어 있다.


패션 산업, 온실가스의 숨은 주범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
이는 선박과 항공산업을 합친 것보다 많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과정에서 33kg의 탄소가 발생하며,
이는 자동차로 111km를 주행할 때 배출되는 양과 같다.

 

패션은 단순한 ‘유행 산업’이 아니라,
지구의 공기를 바꾸는 거대한 환경 변수다.


바뀌는 인식, ‘지속 가능한 패션’으로

영국 런던에서는 패션 산업을
기후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G7 회의에서
“패션 브랜드는 환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유럽 패션계는 이제 친환경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한 ‘업사이클링 패션’,
폐페트병을 화학 반응시켜 실로 만든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식물성 가죽과 코르크 원단 등이 등장하고 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패션 산업이 스스로 내뱉은 환경 부채를 갚기 위한 첫걸음이다.


‘멋’보다 ‘의식’이 필요한 시대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이제는 지구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가 티셔츠를 고를 때,
그 안에는 물 2,700리터, 탄소 33kg,
그리고 한 노동자의 하루가 들어 있다.

 

결국 옷을 고른다는 건,
어떤 세상을 입을 것인가를 고르는 일이다.